自筆署名有感/어문회보(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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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筆署名有感
張鍾權(詩人, 季刊 리토피아 主幹)
創作物이 들어있는 郵便物을 받으면 우선 표지를 들치고 맨 앞장 面紙에 쓰여 있는 著者의 自筆署名을 살피게 된다. ‘평소 베풀어주신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동안의 열과 성을 다한 작품집을 보내드리오니 삼가 은혜로운 가슴으로 챙겨두시고 또 읽어주시길 바라나이다’라는 뜻의 문구가 대부분 들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署名을 발견하면 보낸 이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 환한 미소가 퍼진다. 보낸 이의 고맙고 따스한 마음이 먼저 달려온다. 수고로운 그 동안 작품 활동의 결과물을 누구보다 먼저 보아주십사 보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그래서 아름다운 自筆署名이 담긴 책은 그 책에 담긴 수고와 정신이 두 곱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이 적극적일 것은 自明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책상 앞에 챙겨두고 틈이 날 때마다 바라보게 된다. 보낸 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읽는 것도 즐겁다. 書架가 비좁아 헌 책을 정리할 사정이 생겼을 때에도 署名이 담긴 책은 끝내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면서 평생 그의 동지가 되기 마련이다.
創作 印刷物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機械文明의 냄새가 짙어서 人間的인 체온을 느끼기가 어렵다. 물론 내용을 읽어가면서 충분히 著者의 냄새를 맡을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이 가득 담긴 自筆署名의 가치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처럼 自筆署名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받는 이에게 肉筆을 통한 자신의 마음과 香氣를 최대한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낸 이의 정성과 향기가 그대로 배어있어서 더 고맙고, 자신을 진정한 벗으로 여겨주거나, 아니면 존경스러운 대상으로 신뢰해주는 것 같아 또 고맙기 그지없다. 날로 각박해져가는 現代社會에서 그래도 나를 인정하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 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향기로운 인사말까지 곁들여 있으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多年間의 작업을 통해 創作 作品集을 만들어낸 분에게 그 결과물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하다.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讀者의 모습으로 다가와 자신의 精神的 産物을 읽어주길 고대한다. 그런데 先輩, 同僚 할 것 없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知人들에게야 오죽하랴. 평소 안면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한번쯤 읽어달라는 소망이 이 自筆署名에 많이 담기게 된다. 어느 정도 讀者를 확보하고 있는 著述家들이야 아무래도 贈呈本을 많이 보내지는 않는다. 쓰기만 하면 읽어줄 사람은 따로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래도 자신의 著書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소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고, 그리고 자신이 아직 이 땅에 살아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며 일종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단 한 마디의 문장으로 멋들어진 인사를 달아 보내는 自筆署名은 받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정성을 다해 써내려간 글씨들이 마치 받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런 감정으로 책을 읽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내용은 당연히 理解의 속도가 빨라지며 기대 이상의 感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보내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대로 받는 이마다 입장에 따라 다른 文句를 만들어내느라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著書를 만들어내는 정도는 아니다 하더라도 이런 작업을 통한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소중한 人間的 태도일지는 不問可知의 일이다. 반대로 대충대충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간결한 文句를 사용하여 휘갈겨대는 署名은 아니 함만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형식적인 인사와 署名은 오히려 받는 이에게 불쾌감만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文句가 쓰여 있느냐, 어떤 筆體로 쓰여 있느냐,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이런 것들이 받는 이에게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분명히 自筆署名 또한 나를 숨길 수 없는 거울일 수 있는 것이다. 받는 이에 대한 자신의 상대적 태도가 알게 모르게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글은 물론이지만 글씨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속일 수 없는 흔적이다. 우리는 평소 숱한 말과 글과 글씨로 인해 감춰두었다고 생각했던 속마음을 사실은 창피할 정도로까지 노출시켜버리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조금만 더 자신을 낮추고, 조금만 더 상대방을 존경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작은 실수들이 두고두고 미안스럽게 하거나 황당하게 만드는 일이 없지 않은 것이다. 인사 文句에서부터 呼稱과 마무리까지 받는 이마다에 따른 정성스러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남의 著書를 받아볼 때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科學文明의 사회가 불안하고 위태롭다. 따뜻하고 소중한 人間的 냄새가 자꾸만 퇴색하여 사라져 간다. 機械와 速度에 빠져든 세상은 어디를 향해가는 지도 모르고 덩달아 꼬리를 물고 달려간다. 이럴수록 人間的인 향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너를 생각한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나는 당신을 존경한다.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희망이요 생명과 같은 존재이다.
단 몇 줄의 아름다운 自筆署名을 통해 人間的인 향기와 신뢰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받으면서 따뜻하고 감미로운 인간미를 챙겨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듯하다. 機械文明 역시 인간 정신의 所産이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정신의 産物인 機械文明에 인간이 거꾸로 끌려가는 듯한 세상에 살면서 인간적인 自尊心을 지키고 교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肯定的이며 可能性이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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