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약물 복용이 남긴 교훈(월간 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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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어머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위장의 이상으로 소화제와 진통제를 애용해 왔다. 아직은 누구에게 짐이 되기 싫으시다며 굳이 아버님과 두 분이서만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필자는 가끔 부모님께 들렀다가 방안 설합에 가득 쌓여 있는 소화제와 진통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님께서는 속이 쓰리거나 탈이 생기면 이 약들을 상습적으로 복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병원에 가서 종합진찰을 한 번 받아보자는 자식들의 의견은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리곤 하셨다.
아마도 50여 년을 투박한 시골에서 살으셔서 번거롭고 돈 들어가는 병원 행차를 마다하고 매일매일 몸소 약국에 들러 값싼 알약을 구해오곤 하시는 것일 터였다. 게다가 주변에 경험이 많아 해박한 약사 나리까지 거느리다 보니, 양약의 효험을 필요 이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 터였다.
언젠가는 억지로 병원으로 모셔 종합진찰을 받아보고 위장을 검사해 보았지만, 위가 조금 헐어있을 뿐, 별다른 이상이 없어보여 필자도 그만 안심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병원에서 약간 지어준 궤양치료약을 먹는 것 외에는 다시 병원을 찾지 않으셨다. 의사도 장기적 치료를 그렇게 강요하는 성싶지는 않아보였다. 그리고는 속이 쓰릴 때마다 언제나처럼 소화제와 진통제를 찾으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님께서 동네 주변의 치과의원에서 치아치료를 받다가 별안간 실신상태로 돌입한 것이다. 갈아대는 치아분말이 위장으로 넘어가 심한 구토증세를 일으키다가, 결국 그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하신 것이었다. 일단 급한대로 주변의 내과의원을 찾았다. 한참 후에 어머님께서는 의식을 되찾으셨고 외견상 별 이상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검진한 의사 역시도 위장에 상존하고 있는 염증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추측진단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큰 일은 그 일주일 후에 일어나고 말았다. 의사의 전화호출을 받은 필자는 문득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그러나 설마는 결국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어머님의 위 속에서 암 조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종합병원으로 옮겨서 입원을 시켜 늦기 전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방 집안은 마치 상이라도 당한 집처럼 어수선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형제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서로 책임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통증을 참으시고 약으로 그렇게 다스리고 계셨을 때에 벌써 정확한 진찰을 받아보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의논이 있은 후에 나는 어머님을 인천의 종합병원으로 모셨다.
병원에 가자마자 먼저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내시경 검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있어야 할 암조직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일전 내과의사의 진료소견서가 있던 터라 의사들은 분명 살아있는 암조직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장시간의 씨름 끝에 위의 맨 밑부분인 십이지장 입구에서 그 조직을 발견하였다. 즉시 위를 완전히 절제해 내는 수술을 시작했고, 그 결과 다행히도 근육까지 먹어들어가지는 않은 초기암임이 드러났다.
이 수술이 5년 전에 있었으므로 어머님은 이제 암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시점이다. 필자는 이 수술을 전후 해서 몇 차례나 어머님께 이후부터는 알약 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것으로 기인하여 암조직이 생겨났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약물과용이 몹씨 신경에 거슬렸다. 차라리 통증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작은 위 속의 상처를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해서 다시 암조직으로 발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약물이란 필요 이상으로 과용하게 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필자도 강하게 갖고 있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끝내 필자의 말을 묵살해버리고 계속하여 소화제와 진통제를 드시곤 하였다. 수술이 끝난 후에 항암제를 투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사의 말이 다시 어머님께 자신감을 심어주었는지도 몰랐다. 지금 필자의 어머님은 다시 병원을 찾는 일 주기적으로 생겼다. 암조직이 다시 생겨난 때문이 아니라, 피부에 심각한 상태로 피어나는 두드러기와 반점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은 이 반점에 대한 검진을 여러 차례 해보았다. 허지만 도무지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필자도 당연히 그 증상의 원인이 약물과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머님께서는 진통제를 한 알이라도 먹기만 하면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이제 어머님께서는 절대로 소화제나 진통제를 더 이상 드시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신기하게도 두드러기나 반점의 증상이 서서히 줄어들거나 그 발생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 자식의 입장에서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연로하신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위가 제거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어머님께 단순하고 간단한 신체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할 것을 권했다. 동시에 어려운 일이지만 식사에 있어서도 적절한 량과 시간을 체크하여 일관성있게 드셔줄 것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발 스스로 고민을 사서 하지 마실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마음이 편해야 몸에 이상이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이것이 어머님께 도움이 되든 아니 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결코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믿고 있고, 어머님께서도 이제는 서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다.
한 평생을 살다보면 몸에 병 한 번 생기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하다 못해 독한 감기나 두통으로 약국이나 병원을 찾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어떤 사람은 다리뼈가 부러지거나 해서 병원을 찾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내장의 심각한 병으로 대수술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의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의 병은 대체적으로 심리적 상태의 급격한 변화나 지속적인 압박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의 심리를 해부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 말이 맞는 지 맞지 않는 지는 아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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