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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문학, 궤도를 떠난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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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5,292회 작성일 03-04-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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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의 간이역에서 연기를 퐁퐁퐁 내뿜는 석탄열차는 출발했다. 꿈에 부푼 승객들은 간이역을 거칠 때마다 하나둘 늘어 어느새 열차를 북새통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목적지는 미지의 세계였다. 햇빛은 따사로왔으며, 바람은 부드러웠다. 창밖의 풍경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빛깔을 드러내며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열차는 충분히 그들을 그들이 원하는 세계로 안내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미지의 세계가 어떤 세계이든, 그들이 도달하는 곳이 어디든 그들에게는 신비의 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열차는 제 마음대로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의욕이 앞선 열차는 여행객들의 들뜬 기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여행객들을 끌고가고 있었던 것이다. 열차는 당장에는 안내자였으며 주인이었으며 권력자였다. 자신만이 여행객들을 목적지까지 안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무도 자신을 떠나서는 어떤 여행도 불가능하리라 믿었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고 불안해진 여행객들은 웅성거렸다. 안내방송은 기가 막힌 언변으로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으나 한번 불안해진 여행객들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예 그 정교하고 아름다운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들이 애당초 원했던 미지의 그 세계만을 고집했으며 그러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열차에서 내리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다시 간이역을 지날 때마다 승객들은 하나둘 열차를 떠났고 맨 마지막으로 열차를 끌어가던 기관사마저 내리고 말았다. 마침내 열차는 저 혼자 기가 막힌 자신의 세계로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 열차의 사라지는 꼬리를 지켜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 열차의 목적지에 대해 신비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 열차에서 내리게 된 사실에 대해 후회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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