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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덫에 걸리다(내항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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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519,628회 작성일 03-04-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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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 1>. 시, 잃어버리다.

시는 인간의 표현이다. 시는 인간적 정신의 산물이다. 시는 인간적 세계의 표출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시는 바로 인간 자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 속에서 인간을 본다. 인간의 정신을 찾는다.



● 행위 2>. 시, 독자를 찾다.

시는 독자를 요구한다. 시는 홀로 부르는 노래이지만,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시는 독자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독자의 수준이 시의 수준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독자의 수준을 탐색한다. 독자의 수준은 곧 시의 수준이다. 시는 현재의 표현이다.



● 행위 3>. 시, 일상이다.

시는 몰이해를 필요로 한다. 시는 대항자를 필요로 한다. 시의 생명은 이 몰이해와 대항자를 극복하는 데에 있다. 시인은 그들의 몰이해를 이해시켜야 한다. 시인은 그 대항자들을 굴복시켜야 한다. 그러나 몰이해의 울타리는 철벽보다 강하다. 대항자의 칼날은 도낏날보다 더 무섭다.



● 행위 4>. 시, 음악이다.

시는 진실이다. 그래서 시는 편안하다. 아파도 편안하고, 슬퍼도 편안하다. 시는 그림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다. 인간의 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은 그래서 언제든 하나로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그곳에 시가 있다.



● 행위 5>. 시, 화장실에서.

시는 일상이다. 일상의 표현이다. 시는 특별한 것도 아니고, 비인간적인 것도 아니다. 시는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시는 단지 사람에 의해 쓰여지고 읽혀지는 오직 사람의 것일 뿐이다.



● 행위 6>. 시, 꽃이다.

시는 시인이 온몸으로 피워내는 한송이의 꽃이다. 독자는 시 속에서 시인의 아픔을 엿볼 수가 있다. 고통으로 피워내는 꽃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고 지순한 것이다. 꽃은 시든다. 그러나 시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



● 행위 7>. 시, 구호인가.

이 땅은 구호로 가득차 있다. 이 땅의 독자들은 구호에 익숙해 있다. 구호야말로 가장 빠르고 민감한 반응을 가져온다. 그래서 구호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구호는 어디서나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는 결코 구호가 아니다. 시는 강변도 아니다.



● 행위 8>. 시, 저항하다.

시는 시대의 비판이요, 저항이다. 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요, 동시에 도전이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시인은 비록 약하지만 시는 무엇보다 강하다. 시는 획일화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시는 비판자에게 돌아오는 무지한 지배자의 질타에도 끊임없이 항거한다.



● 행위 9>. 시, 비논리이다.

시는 논리가 아니다. 시가 논리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인간은 논리가 아니다. 인생도 논리가 아니다. 자연 또한 논리가 아니다. 시는 인간과 인생과 자연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의 감동을 노래한다.



● 행위 10>. 시, 태우다.

죽음은 시의 영원한 테마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제기하는 것이다. 시인에게는 걬뿐만이 아니라 죽음조차도 엄숙하다.



● 행위 11>. 시, 죽다.

시는 결국 감각적 대중매체에 굴복할 것인가. 시는 결국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인가. 만약에 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큰롤이 자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가 될까. 시인은 두렵다.



● 행위 12>. 시, 무엇인가.

전통적인 시가 지니고 있는 시의 한계로는 현대의 복잡한 세계와 다양한 정신의 변화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새로운 시의 형태와 새로운 예술장르가 모색이 된다. 형태에 따라 정신의 모양도 다르게 표현이 될 수 있을 지 모른다.



● 행위 13>. 시, 체포되다.

시인은 반란자요, 배반자이다. 시인은 항상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날카롭다. 시인의 눈은 무섭도록 솔직하여 두려워하는 자들을 만들어낸다. 시인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곧잘 시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 애를 쓴다. 시를 헛소리라고 매도한다.



● 행위 14>. 시인, 누구인가.

시 쓰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태백은 시선으로 불린다. 시 쓰는 능력은 후천적으로 얻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두보는 시성이라고 불린다. 인간은 모두가 누군가에게 시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일 때에 그는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행위 15>. 시인, 위태롭다.

시인은 위태롭다. 항상 불안하고, 항상 부자연스럽고, 항상 무언가에 붸기고 있다. 시인은 자신을 쫓는 대상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보다 더 두려움을 느낀다. 만약 달아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극복할 수도 없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에 시인은 마지막 저항을 시도한다. 급기야 불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몸을 태운다.



● 행위16>. 시인, 죽음의 덫에 걸리다.

시인은 무조건적이며 거의 반사적으로 시를 사랑한다. 시인은 시를 쓰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를 쓰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에 시인은 가장 행복하다. 시인은 바보같이 그렇게 믿는 족속들이다.



● 행위 17>. 시인, 죽다.

시인은 절박하다. 시인은 항상 자신의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쉽게 절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반면에 시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시는 결코 포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시인의 죽음을 댓가로 하여 시는 완벽하게 살아 남는다.



● 행위 18>. 시, 알 수 있는가.

시에는 합창이 없다.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독창만이 존재한다. 이 땅의 시인은 모두가 다 훌륭한 성악가이다. 그들이 홀로 노래를 부를 때에 그들의 소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혹 시인들이 제각기 부르는 노래가 독자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합창이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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