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한반도
장종권 작품세계

수필

 

경우있게 살자(세종병원보 1992)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204회 작성일 03-04-21 11:30

본문


걸프 전쟁이 한창이다.미국이 주축인 다국적군은 엄청난 공중 폭격으로 물량공세를 펴는 듯 하고,그 기세에 압도당할 법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기만 하다. 한 두 국가간의 마찰이 지역 전쟁으로 번지고 급기야는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는 듯하다. 단기간에 승부가 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장기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며, 벌써 걸프만에 기름이 유출되어 사상 유례없는 환경의 재앙이 뒤따를 게 틀림이 없을 것같다. 이 전쟁을 안방에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참담한 공포를 똑같이 느끼기도 할 것이고, 어쩌면 에너지난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어떻든 남의 집 불구경으로 넘어갈 수만은 없는 입장에 서있는 듯하다.

이런저런 보도를 접하면서,동시에 인간들의 전쟁이란 아이들끼리의 싸움만도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갖게 된다. 명분이야 나름대로 있겠지마는 전쟁의 불씨는 분명 서로의 이익 다툼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를 죽인다. 선전포고만 한다면 언제든 전쟁을 시작할 수 있고, 전쟁이 시작되면 전투중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죽어나가도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일반인의 생명은 좀 덜한다지만 군인의 목숨이란 그저 파리 목숨이다. '우리가 50만이 희생된다면 너희도 10만 정도는 희생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수십만의 목숨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판이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쟁이란 그런 것인가. 또한 하루에도 열두번 씩 접하는 단어가 있다. '보복'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백 배의 보복'이라느니, '당연한 보복'이라느니, 이런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관계의 합리화나 익숙해져선 안될 단어들의 남발이 인류에게, 더욱이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류의 앞날을 위해서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본적으로 특정 개인의 영웅주의라든지 서부의 건맨 또는 람보식의 대응논리 자체가,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불필요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들인 것이다. 차라리 전황보도가 없었으면 싶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미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너무 인간스럽지 못하지 않느냐 라든지, 일면 어른스럽지 못하지 않느냐라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살생활 어디에서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가 있다. 진실이 가려진, 아니면 진실의 가치가 사라진 껍데기로서의 인위적 위선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실체여서는 안될 것이며, 우리들의 미래나 인류의 미래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경우있게 살아야 한다. 이그러진 껍데기를 벗고 아름다운 진실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끼리끼리의 싸움도, 국가간의 전쟁도, 인류의 멸망도, 우리는 애초에 막아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