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에(보건세계 1991년 4월)
페이지 정보

본문
다시 4월이다. 세상은 봄빛으로 가득하다.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떠나는 바람조차도 싱그럽기 짝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제 빛깔을 내기 시작하면서, 죽어있던 것마저도 어울려 되살아나며 살아서 숨쉰다.
자연은 해마다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선물한다. 지난 겨울은 별로 어렵지 않게 지낸 성싶다. 난방기구 판매상들이 내내 울상이었다니 짐작할 만 하다. 춥지 않은 겨울이어서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다. 촌부들의 말씀에 겨울이 매섭지 않으면 다음 한해 농사가 걱정이라 했는데, 요즈음 도시인들 농사일이야 이제 먼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고, 다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이유가 공해라든지 자연의 학대라든지 등의 우리들 인간의 몰상식에서 기인한다 하니 안타까운 마음 더한다.
봄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벌써 놀랄만한 소식부터 전해진다. 수도권의 상수도원이 오염되었다, 아니다, 설왕설래 말도 많았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낙동강물이 또 말썽이다. 비단 낙동강물 뿐만이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 어디든 오염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설마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고 넘기려던 안일한 생각이 이쯤에서는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어느 몇몇 사람, 또는 기업가나 주무 부서인 관공서의 공무원들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다 먼 안목으로 바라볼 때에 우리 모두의 공동적인 책임이 아닌가 싶다. 나아가서는 무분별한 욕망으로 눈이 아두워진 채로 겁없이 자연을 훼손시켜가고 있는 우리 인간의 자업자득인 양 싶기도 하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자연과 싸워왔다. 자연을 이기는 길만이 인간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연이 주는 혜택보다는 자연의 엄청난 위력이 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에는 어느 만큼은 그 공포에서 벗어난 것처럼은 보이지만, 오히려 인간들의 알량한 지식과 사고력으로 자연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려든다는 점에서, 자연을 능멸하지나 않나 심히 우려되는 바 크다.
인류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또는 기실 볼품 없는 수준의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자축하고 과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당돌하게도 그간의 자연이 가져다 준 은총을 잊어버리고, 자연이 던져준 선물을 더럽히지나 않는 것인지 걱정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북한강의 웃머리 백담사 근처에서부터, 강변을 따라 서울까지 진입해본 적이 있다. 여러개의 댐을 거쳐 그때마다 분명하게 달라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손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자연의 해충임을 실감하였다. 한강 하류에 이르러 끝내 인간은 그 푸르게 살아 숨쉬던 강물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4월, 아직도 자연은 건재하다. 산으로 나가면 지금도 진달래와 철쭉은 흐드러지게 피어, 보는 이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준다. 골짜기를 돌아나오는 바람은 자연의 신선한 내음을 한껏 실어와 한번만 들이마셔도 그저 살 것 같다. 영원히 살 것 같다.
햇빛은 날카롭지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무디지도 아니한 손길로 부드럽게 부드럽게 속살 깊숙히 파고 든다. 한번만 돌아보자. 우리,그 빛나는 봄의 얼굴, 자연의 지순하고 따스한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가? 어린 시절 그 척박한 시골의 고향에서 흙빛이 된 어머니의 얼굴처럼 그때는 전혀 아쉬움 없이 늘상 보지 않았는가.
이제 그 고향의 들에서 하늘에서 어디서나 우리가 만끽하며 살았던 자연의 얼굴을 다시 보아야 한다. 물을 아끼고 숲을 아끼고 흙 한줌,풀벌레 한 마리라도 소중하게 아껴서 그 지순한 얼굴을 다시 보아야 한다.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한 고향의 하늘을 듬뿍 안겨주고, 고향의 붉은 흙과 푸른 들을 남겨주어, 그들이 오염되지도 바래지도 않은 가슴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육체를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자연은 분노하지 않지만, 분노할 줄 아는 자연을 소중하게 헤아리는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살자. 다시는 자연을 능멸하여서 도리어 우리 스스로가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여 한 말씀 드리노니, 우리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 합시다. 사랑합시다.
- 이전글문학의 해에 바란다(인천일보) 03.04.21
- 다음글우리는 자랑스러운 광성인 03.04.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