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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생명의 소리여야(제2시집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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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572회 작성일 03-04-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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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학은 특히, 시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떤 역할이든 그 역할을 해야 한다면, 현재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가. 자칫 시인은 어항 속의 금붕어 신세는 아니겠는가. 그 찬란한 몸짓으로 스스로의 자만감에 빠져서 사실은 구경꾼도 없는 어항 속을 활보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만약에 시의 사회적 기능은 유보한다 하드래도, 그렇다면 개인적 기능으로서의 시는 과연 시인 자신의 살아있음의 증거로서만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기실 살아 있다는 생명의 소리라도 온전하게 내보이고는 있는 것일까. 시가 시인에게 물질의 밥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시가 시인에게 정신의 밥은 제대로 주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것들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나는 아직 우리의 시가 사회적 기능으로든 개인적 기능으로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중국의 문학사만 돌아 보드래도, 초사와 시경을 시작으로 해서 중국 문학은 항상 구체적인 것을 시도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회의 풍자이든 비판이든, 역사에 대한 현실의 고발이든 개인주의적 순수 낭만이든, 아니면 이민족에 대한 끝없는 저항이든 간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과 정신을 갖고 있었다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은 거나 다름 없이 사회와는 철저하게 유리된 수많은 한시라든지, 틀에 박힌 가사들, 그리고 현대의 매너리즘에 빠진 순수시나 서정시, 또는 언어의 예술성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이는 일군의 목적시들은, 아직은 우리의 시가 얼마나 더 많은 각고의 노력을 보여줘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부끄러운 두 번째의 작품집을 선보이면서 한가지 반성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저의 고지식한 옹고집이 과연 저의 시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돌아보는 일에서부터, 시인의 뼈와 살이 그리고 그곳에 묻어 있는 시인의 정신이 스스로 자신할 만큼이라도 작품 속에 투영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무한한 변화 속에서 살을 저미는 자기 체험과 시 공부를 더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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