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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과연 위대한 것인가(인천문학상수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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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733회 작성일 03-04-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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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첫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새해가 열릴 때까지는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떠들썩했는데, 지나고 보니 여느 해나 별로 다른 게 없군요.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허지만 제가 이 자리에 서고보니 그래도 제게는 무언가 조금은 의미가 있지도 않겠느냐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988년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작고하신 이석인 시인께서 인천문협의 새 회장직을 맡으셨을 때였습니다. 그 때 전임 회장이셨던 역시 작고하신 심창화 선생님께서 전임 기간중에 어렵게 만들어 놓으신 약간의 돈을 내놓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천문학상을 제정하려고 푼푼이 모아둔 돈이다. 공로상에 가까운 인천시문화상과는 별도로 가능한 한 문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문인들에게 수여하여 인천문단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집행부가 바뀌었으니 새 집행부가 대신 뜻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 그 해가 최초로 인천문학상이 수여된 해였습니다.

이제 제가 이 상을 받고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 동안 인천문단의 쟁쟁한 인물들이 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약간의 우여곡절도 없지는 않았으나 크게 흔들리지 않고 본래의 취지대로 잘 진행되어 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제가 이 상을 받고보니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좋은 분들에게 이 상이 돌아갔어야 하지 않았느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전 요즘 묘한 갈등에 빠지곤 합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한 불신감 같은 것 때문입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순식간에 바뀌어 가는데 저는 그 변화를 전혀 따라잡을 수 없을만큼 게으르다는 것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세상의 변화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값진 것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즘의 이런 변화도 언젠가는 제 자리를 잡고 안정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가 완전한 것으로서 그 가치가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시는 과연 무엇입니까? 시는 진정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시는 과연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습니까? 혹시 골동품이 되어 구색을 맞추는데 쓰이거나 어항 속의 금붕어는 아닙니까? 독자들은 이미 물 건너에 가 있는데 시인은 그것도 모르고 제 잘난 맛으로 홀로 시를 쓰거나, 저희들끼리 나누어 읽는 신세는 아닙니까?

이제 책문화는 서서히 인터넷과 사이버문학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있습니다. 고급스럽고 정통성이 있는 문학의 세계는 감성적이고 단편적인 재미에 여지없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예언자적 능력을 갖고 있었던 시는 이제 자신의 운명조차도 예측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작가가 글을 써도 초판 계약이 겨우 이삼천부이고, 많이 팔려야 오천부인 세상입니다. 시인이 시집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세상이면서도 대부분의 시인들은 자비 출판으로 시집을 내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돌려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미적 세계에 심취하여 심오한 정신세계에서 구원을 찾고 있는 사이에 세상은 일확천금의 경제논리와 사이버세계를 구축해가는 과학의 세계와 달콤하고 순간적인 실용적 세계에서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시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시는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요즘 제 화두는 이런 것입니다. 시는 과연 위대한 것인가, 시는 그렇게 위대해야만 하는가, 시는 언제까지 위대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떠난 시, 읽어줄 사람이 없는 시를 언제까지 천연덕스럽게 쓰고 있을 것이며, 언제까지 독자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세계만을 고집할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게 이 상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리며, 문협 집행부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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