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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궁리나루(밥통의 계보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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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761회 작성일 03-04-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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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궁리나루(밥통의 계보를 묻다)

쌍궁리 나루는 외갓댁 가는 길에 있었다. 유년의 나는 이 나루를 건널 때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묘한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으며 동시에 황홀감에 빠져들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절대적 태고의 모습으로 길게 늘어선 갯펄은 어린 나의 시야에 아직 본 적이 없는 바다의 의미를 심어주었으며,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듯 거세게 흐르는 물살은 인간에게 필요한 신의 존재를 이후 언제든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극복할 수 없는, 그리고 결코 극복되어질 수 없는 지독한 공포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곁에 계시지 않았다. 두 분은 농사일이 바빴으므로 이 길을 나는 언제나 세 살 터울인 누이와 함께 했다. 간혹은 커다란 외삼촌들이 우리집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나를 데불곤 했었다. 먼 논두렁길을 지칠대로 지칠 만큼 걸은 후에 비로소 이 쌍궁리 나루에 이르면, 그 동안 내내 가슴을 조렸던 나는 한 순간에 와 닿는 공포감에 진저리를 치면서 뒷걸질을 쳤다. 어떤 것도 도무지 저 거친 물살을 헤치고 건널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아무도 신뢰할 수가 없었으며, 나룻배에 한 발짝도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누이는 용감했다. 이미 중학교 교복을 입은 누이는 겁도 없이 뱃전에 성큼성큼 올라 뱃줄을 거머쥐고 배를 띄웠다. 나는 그런 누이의 치마꼬리만 붙들고 있었다. 혹시라도 누이가 물살에 휩쓸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외 나는 도무지 어떤 것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 누이는 꼭 붙들고 당기던 뱃줄을 놓치고 말았다. 배는 휘청거리며 강물에 휩쓸렸고 누이는 뱃전에 나동그라졌다. 공포에 질린 나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다시 뱃줄을 거머쥐려는 누이의 필사적인 노력은 연약한 누이의 손바닥을 붉은 피로 물들였다. 나는 꿈을 꾸듯 몽롱한 시선으로 이를 악다물고 뱃줄을 거머쥐려는 누이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을 건너고 나면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감동이었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쌍궁리나루는 뜨거운 햇살 아래 마치 꾸벅꾸벅 조는 노인장처럼 앉아 있었다. 거친 강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돌아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다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진저리를 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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