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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은 배꼽이다('96 내항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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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710회 작성일 03-07-2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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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은 배꼽이다('96 내항 권두언)


내항은 배꼽이다. 바다를 떠나서 바다를 그리는 배꼽이다. 바다는 시의 어머니요, 바다는 문학의 어머니요, 바다는 우리들의 어머니이다. 내항은 그 너그러운 바다와 만나는 우리들의 배꼽이다. 우리는 시를, 혹은 문학을 우리들의 어머니와 만나는 배꼽줄로 삼는다. 내항은 인천의 배꼽이요, 반도의 배꼽이요, 우리들의 배꼽이다.

잊혀진 배꼽을 씻자. 우리들의 소중한 배꼽을 씻자. 탈이 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 너무도 무심하게 달고다녔던 우리들의 배꼽을 한번쯤 후벼보자. 일찍이 어머니와 우리를 연결시켰던 이 생명줄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별 볼 일이 없었으므로, 배꼽은 우리가 먹고 자고 노는 데에는 아무 필요가 없었으므로.

배꼽의 때를 벗기며 우리들의 바다를 돌아보자. 우리들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절대적인 자궁을 생각하자. 어머니 같은 바다와, 바다 같은 어머니의 자궁을 한번쯤 돌아보자. 그곳은 해구요, 호천이요, 망극한 세계이다. 그러므로 어둠은 길이요, 무지는 진리니라. 당신의 빛나는 눈과 어설픈 지식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우리들의 시커먼 배꼽, 무심한 배꼽, 부끄러운 배꼽을 닦으며 어머니를 생각하자. 바다의 침묵과 어머니의 용서를 생각하자. 생각하자.

배꼽의 때를 벗기다가 한번쯤 배가 아파보자. 배꼽을 후비다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후비다가 한번쯤 피를 보자. 그러고는 거기에 새 배꼽줄을 심자. 아직도 어머니는 살아계시고, 아직도 바다는 저렇게 넉넉하니, 우리 무지한 몸뚱이에 이제 새 배꼽줄을 심어도 결코 늦지 않았다. 그 배꼽줄을 통하여 어머니의 더 큰 이야기를 듣자. 그 배꼽줄을 통하여 바다의 더 깊은 말씀을 듣자.

1996년 10월(후에 아산호 가는 길 연작에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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