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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시문학상 탄생에 즈음하여/리토피아 41호/권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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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115회 작성일 14-03-0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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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시문학상 탄생에 즈음하여
 
 
  세상에는 하늘도 많다. 세상에는 별도 많다. 세상에는 꽃도 많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하늘을 가지고 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별을 바라보고 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꽃을 아끼며 산다. 이 하늘이 어떤 하늘보다 높은 하늘이기를 바란다. 이 별이 어떤 별보다 반짝이기를 바란다. 이 꽃이 어떤 꽃보다 예쁘게 피기를 바란다. 그것이 세상이고, 사람이고, 하늘이고, 별이고, 꽃이다.
 
  나의 하늘은 김구용 스승이고, 나의 별은 김구용 스승이며, 나의 꽃은 김구용 스승이다. 그리고 나의 하늘과 별과 꽃이 리토피아의 하늘이며 별이며 꽃이기를 바란다. 또한 그리고 나와 리토피아의 하늘과 별과 꽃이 이 세상과 독자들에게도 하늘이 되었으면 싶다. 별이었으면 좋겠다. 꽃이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그 마음으로 시를 쓰고, 그 마음으로 리토피아를 창간하였으며, 그 마음으로 이제 김구용시문학상이 탄생되었다고 스스로 믿는다. 내게 하늘과 별과 꽃이 없다면 리토피아에도 하늘과 별과 꽃이 없어야 맞는 일이다. 그렇다면 없는 하늘과 별과 꽃으로 리토피아는 독자들을 우롱하고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제 내 하늘과 별과 꽃을 독자들 앞에 내놓으며 사랑 받기를 간구한다. 혹시나 나로 하여 이 하늘과 별과 꽃이 때라도 묻을까 지극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내 아버지도 미울 때가 있다. 내 어머니도 미울 때가 있다. 내 스승도 미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구용 스승은 이와 달랐다. 너무 높은 하늘이었으며, 너무 빛나는 별이었으며, 너무 순수한 꽃이었기 때문이다. 인연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한국 시단에서 읽어주는 이 별로 없는 어려운 시를 쓰면서도 항상 행복해 하셨던 스승이셨다. 솔직하게 취하시고, 솔직하게 삐지시고, 그래도 누구 하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던 스승이셨다.
 
  문예지는 줄기차게 쏟아져 나온다. 문학상도 끊임없이 탄생된다. 문학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주춤거리면서도 문단은 갈수록 풍성해진다. 자본의 자유다. 정신의 자유이고, 신념의 자유이고, 의미와 가치의 자유이다. 그러니 이미 대한민국은 문학인의 나라이며 시인의 나라이다. 전도된 가치란 없다. 모든 가치는 의미가 있으며 새로운 가치는 계속 만들어진다. 이 대로라면 축하할 일이다. 만세를 부를 일이다. 그런데 이 대로가 아니라면, 만약 이 대로가 아니라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리토피아는 이 대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이 대로가 아닌 세상에서의 문학과 시의 역할을 모색한다. 그곳에 김구용시문학상이라는 밥상을 차려놓는다.
 
  부정과 반역의 정신이면 어떠랴. 기존 질서의 새끼줄을 부여잡고서 새로운 동아줄을 꿈꾸는 환자이면 어떠랴. 비록 정신의 문제는 열악한 육체의 환경에 벗어날 수는 없다하더라도 이 썩어가는 육신을 자양분 삼아 피는 꽃이면 어떠랴. 의미 없음의 세상에서, 답 없음의 세상에서, 의미를 강변하고, 답 있음을 강변하는 촌뜨기이면 어떠랴. 그래도 리토피아라는 헐거운 육신에 버거운 옷을 입힌다. 스스로 눈을 가리면서 하늘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고개를 수그리면서 별이라고 주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끝내는 등을 돌리면서 꽃이라고 거짓말 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시인이 자존심이 아니고 사람인 것이 자존심인 사람이었으면 싶다. 시 자체가 긍지가 아니고 살아있는 정신이 긍지인 사람이었으면 싶다. 칼은 베기 위해 존재한다. 날선 칼과 잘 훈련된 검객은 끝내 두려운 존재이다. 차라리 베인 곳을 치료하는 시였으면 싶다. 상처 받은 세상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치유하는 능력 있는 시인이었으면 싶다. 물론 이것이 선정 기준은 아니다.
 
  잘 나가는 시인은 한국시단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독자가 많고 평자의 칭송이 많은 시도 한국시에는 넘쳐난다. 그러나 어떤 시가 좋은 시이고, 어떤 시인이 훌륭한 시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치의 창조는 나름 대로이다. 기존의 질서와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는 돈키호테도 세상에는 있다. 역설의 숨은 재미와 반역의 희열이 단순한 장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대로大路와 정도正道는 같지 않으며, 그렇다고 정도가 옳은 것만은 아니다. 길은 어디에도 있다. 걷는 순간 그것이 길이다. 리토피아는 대로이든 정도이든 신경 쓰지 않고 가고자 한다.
 
  리토피아의 새로운 10년을 김구용시문학상으로 연다. 하늘다운 하늘과 별다운 별과 꽃다운 꽃을 리토피아의 정신으로 가져오면서, 리토피아를 성원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지난 10년과 같은 무한한 신뢰를 주실 것을 믿는다. 리토피아에는 리토피아만의 힘은 없다. 있을 수 없는 힘은 꿈꾸지도 않는다. 도전에는 분명히 목표가 있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머무는 시간은 오직 한 순간이다. 그러니 목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생명체가 이유도 모른 체 열심히 사는 것처럼.
201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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