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한반도
장종권 작품세계

수필

 

문학의 해에 바란다(인천일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850회 작성일 03-04-21 11:38

본문


이 시대에 문학의 가치를 따지거나 문학의 위의를 주장하는 것은 차라리 바보같은 짓일런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급격한 해일은 이 땅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쓸어가 버렸다.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신뢰는 물 건너 갔으며 정신은 이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문명은 올바른 정신문화의 싻을 짓밟아버렸다.

거짓과 아첨과 사기와 권모술수가 어디에서나 당당한 얼굴로 서 있을 수 있는 이 한심한 풍토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묶은 실로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

문학인들이여, 문인 개인의 생명을 위해서 문학의 생명이 희생되어서야 쓰겠는가? 또 그렇다고 그렇게 소중한 개인적 생명은 작품 속에서 얼마든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는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여 문인은 작품으로서만 말을 하자. 아무리 사회적 병리현상이 세상을 덮었다고 해도 끝까지 문학의 지조를 지키고 문인의 긍지를 지키고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무너져가는 이 사회를 버팅겨보자. 문인들이 제 자리에 의연하게 서있을 때에 문학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문학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는가? 문학이 문인들 끼리끼리나 하는 짓거리로 독자들 눈에 비쳐진다면 이 땅에 문학은 가치가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문인조차도 설 땅을 잃지 않겠는가?

문화예술 정책을 수행하는 시 당국에 고언을 바친다. 문화예술은 결코 폼이 아니다. 아무리 종합문화예술회관이 거금을 들여 건립이 되고, 각 구마다 문화회관이 세워져도, 근본적으로 문화예술이 정치의 도구가 된다거나, 전시적 행정의 주기적 일거리로 전락한다거나, 문화예술인들이 마치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취급되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이 땅의 정신문명은 분명 내일을 알 수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 것이요, 이 나라의 세계화는 기껏해야 돈에 물든 추악한 몰골로 그 모습을 전 세계에 부끄럽게 아주 부끄럽게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은 결코 행정가가 아니다. 어찌하여 모든 문화예술 행사를 문화예술인들에게 맡겨서 그들로하여금 시궁창에 빠져들게 유도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적어도 문인들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 문학행사를 주관해야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퇴보를 조장한다는 사실을 한번쯤 되새겨 주기 바란다.

문학의 해를 맞이하며 문인의 한 사람으로써 오히려 비감함을 느낀다. 그것이 문학에 무슨 보탬이 되랴? 선심처럼 최소한의 보조금을 내밀며 대단한 사업을 해달라는 주문은 또다시 계속될 것이다. 작품을 유보한 문인들은 또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는 노동력을 투입하며 행정가 아닌 행정가로 변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문학의 상실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차제에 전시적 행사를 모조리 걷어치우고 창조적이며 발전적이고 가치있는 사업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