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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사람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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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5,532회 작성일 03-04-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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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벗 K로부터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잘못 되어서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형편이 곤란해진 이웃사람에게 기백만 원의 돈을 빌려주게 되었다 한다. 그 돈은 K가 박봉을 줄여쓰며 몇 년간에 걸쳐 모아둔 돈이었고, 빌릴 때의 이웃의 말인즉슨 1개월 이내에 반드시 되돌려주겠다는 간곡한 간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개월 2개월 아니 반 년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이웃 사람은 일언반구 그 돈에 대한 말이 없었다고 한다. 보아하니 이웃 사람의 형편은 갈수록 더 나빠지는 듯이 보이고, 그래서 K 역시 급히 돈을 써야할 형편인지라 넌지시 돌려주었으면 하고 말을 붙여보았다 한다. 그랬더니 그 이웃은 오히려 K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까짖 몊 푼 돈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지금은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러니 때가 되면 어련히 갚아주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란다. 기가 막힌 K는 그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오늘까지 그냥 기다리고만 있다고 했다.

나는 그 K의 이웃이 잃어버린 상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일반적 상식에 대하여 둔감해져버렸을까. 사람의 도리를 모두 지킨다는 것도 물론 쉬운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양심적 도리조차도 왜 하루아침에 팽개쳐 버렸을까. 왜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애써 얼굴을 외면하고 그들에게 감사하지 못할까.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함에 대하여 미안해 하지 못할까. 왜 그들에게 누를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당당하게 쳐들고 오히려 그들의 인내심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 이웃은 훗날 그의 말대로 여유있는 부를 축적하여 풍요를 누리며 이웃에게 그 나머지의 덕을 베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전혀 부에서는 멀어져 다시는 이미 받아둔 주변의 덕에게조차도 감사하거나 보답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가 상식적이지 못하니 반드시 하는 일마다 실패하여 인생 자체도 험난한 길을 걸으리라고 누가 확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덕을 베풀지 못하고 화의 씨만을 뿌려두면 점점 더 불행에 다가서는 것이라 언제든 그 불행과 만날 수밖에 없으리니 인생 자체가 스스로 불안해지기 마련 아니겠는가.


상식적인 사람은 아름답다. 최소한의 상식일지라도 그것은 최선에 해당할 수가 있다. 상식은 쉬우며 상식은 단순하며 상식은 우리 인간 자체이다. 그러므로 상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쉽고 단순하다는 이유만으로 상식을 경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상식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인간자체임으로 상식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아서도 안 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쉬운 것이 결코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만큼 어려울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움직이며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행동 모두가 인간에겐 중요한 인간적 척도가 될 수가 있다. 정신의 2차원적 고급의식에만 빠져 행동을 1치원적 저급원리로 이해한다면 인간은 적어도 살아서 움직이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부정하는 현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이 움직임에 대하여 우리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움직임에 대하여 우리는 겸손할 필요가 있다. 이 움직임에 대하여 우리는 보다 기뻐할 필요가 있고, 기쁨을 위하여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모두가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행복은 모두의 행복일 때만 행복의 최대가치를 느낄 수가 있다. 불행한 부모를 던져 두고 혼자만 행복해 보라. 여러 형제 중에 혼자만 행복해 보라. 이웃 중에 유독 혼자만 행복해 보라. 그것이 행복이겠는가. 그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는 행복이겠는가.


우리들의 영웅은 언제나 놀랍게도 보통사람들 속에 끼어있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영웅은 전쟁에서의 승리자도 아니고, 돈방석에 올라앉은 천재적 스포츠맨도 아니다. 인기 있는 정치가도 아니고, 시청자를 휘어잡는 연예인도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모두가 거짓말장이가 되고,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의 어리석은 말장난으로 세상을 끌어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정상적인 사람처럼 존재하는 시대에는 절대로 우리들의 영웅은 그들 속에 끼어있지 않다. 끼어 있어서도 안 된다.

우리들의 영웅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지극히 합리적인 보통 사람들 속에 드문드문 끼어 있다. 하루 세 끼 쌀밥에 김치 올려놓고 오손도손 식사를 하고, 가끔은 주말이라고 교외로 나가 토종닭을 삶아먹기도 하고, 이웃집 남자를 만나면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할 줄 아는, 자식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놀 때 주변을 돌아보고 예의를 갖추라 교육시킬 줄 아는, 아무리 시시해 보여도 누구에게나 존경심을 갖을 줄 아는, 그들을 적당히 두려워 하고 그들에게 적당한 자존심을 심어줄 줄 아는, 그런 시시한 보통사람들 속에 우리들의 진짜 영웅은 살고 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상식적인 생활방식, 누가 모를 것이냐.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한 이치를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무시하고 경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린애들에게나 필요할 법한 논리요, 마음만 먹으면 실천하기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너무도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식적인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밑바닥에서나 용케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요령을 모르는 철면피로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보통적 사고방식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는 사람 손들고 나와 보라. 들어 올리는 그대의 손이 진실로 빛나리라. 그대의 손에서 천고의 맑은 바람소리 은은히 들려 오리라.


얼마 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어느 대통령은 보통사람의 논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동안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이질감과 배신감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잘 파악했던 그는 보통사람의 논리야말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혁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철저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들어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이란 누구에게 이용당할 만큼 허술한 것이 결코 아니고, 그것은 거짓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도 가려지지도 않을 만큼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는 절대로 위대하지도 않았고, 결코 영웅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거짓이 들통난 시시껄렁한 대통령 때문에 보통논리는 상당히 흔들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믿었다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 분개하였다. 자신들이 믿었던 한 인간이 도대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통이하였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해 했다. 사람들은 다시 그러한 논리에 속지 않고자 보통에 대한 무장을 단단히 해버렸다. 그러나 그래도 보통은 살아 남는다. 그래도 보통은 위대하고, 보통사람 중에 영웅은 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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