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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
엉겅퀴
 장편소설 '순애'

순애 --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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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785회 작성일 02-06-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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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면서


나는 내가 가장 불쌍해 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하여, 한 여자의 비극적인 사랑과 슬픈 인연을 그리고 싶었다. 인생은 비록 변화무쌍하고 비논리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서도 톱니바퀴처럼 운명적으로 비극을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 한 여자의 슬픈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한 남자의 순간적인 욕망과 침묵은 피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되어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것은 부서질 리도 없고, 멈추어설 리도 없는 인연의 톱니바퀴가 되어 운명처럼, 저승사자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모든 것은 사랑으로부터였다. 슬픔도 사랑으로부터였다. 고통도 사랑으로부터였다. 죽음조차도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내가 철이 들면서부터, 내내 갖고 있었던 의문 중의 하나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한 가지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데, 나는 웬일이란 말인가.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래도 나는 지금 살고 있다. 어쨌든 굶지는 않으면서, 그리고 자존심을 적당하게 살려가면서, 속이 들여다보일지라도 가끔은 폼도 잡아가면서, 일단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나는 매일 배가 고팠다. 마음 편하게 밥을 먹지 못하니 늘 소화불량이었다. 어떤 날은 만사를 잊고 드러누워 잠을 자고도 싶었다. 잠이 들면 이 육신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러나 편안한 잠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 되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래 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내가 시인이 되고 난 다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설가이길 바라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시인이 훨씬 더 마음에 드는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반성했다. 소설가들의 그 엄청난 정신과 세계는 결코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먼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용서와 화해로부터 그들의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뜨거웠으며, 넉넉했으며, 인간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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