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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문학상-밤(1976년 성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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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484회 작성일 03-07-2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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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누군가가 나의 방문을 두드리고 갔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을 그는 밤새껏 두드리다가 새벽녘에야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요란하게 울리던 문소리에도 나는 긴 밤을 포근하게 잤습니다. 나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느즈막한 아침 방문을 열 때 저만치 돌아서 가는 그의 모습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의 들먹이는 어깨와 가슴께쯤의 폭동이 메마른 강을 적시며 가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사무치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도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습니다. 내가 문을 닫은 채 자고 있을 때 나는 시체처럼 죽어 있었으나 다른 모든 것은 살아있었습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으나 나는 무덤들의 땅을 조소하며 정신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밤 방문을 두드리던 손가락은 나를 얼마나 원망하였겠습니까.


이제 나는 자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언제 다시 들려올 지 모르는 문소리에도 반갑게 방문을 열고 그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약속입니다. 나의 귀는 천장에 집을 짓는 거미의 발자국 소리도 들었습니다. 나의 귀는 밤을 구경하던 무덤가를 떠도는 별들의 야경소리도 들었습니다. 방문을 열었지만 그들은 말 없는 얼굴로 씽긋 웃으면서 번개같이 사라졌습니다. 비인 눈으로 나는 밤을 보았습니다. 무수한 인연들이 악수를 하고 서로의 입맞춤을 부끄러워하는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다만 외로운 목격자로 남았습니다. 새벽녘까지도 그들은 나의 방문을 두드려주지 않았습니다. 멀리 어렴풋한 문소리에 나는 그만 수치스런 방문을 닫고 그들처럼 다가오는 잠의 세계를 기다렸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 또 잠을 바꾸고는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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